제목 : 62회 박은수 인사드립니다. 등록일 : 2004-03-02    조회: 592
작성자 : 박은수(62회) 첨부파일:
계성동문 여러분 안녕하세요.
62회 박은수 인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대구에서 동문회 활동뿐아니라, 장애인관련 여러 활동, 본업인 변호사활동을 열심히 해오다가, 이번에 아래의 출마의 변을 가지고 열린우리당의 중앙위원 경선에 나가서 장애인대표 중앙위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서초동 삼풍주유소옆 장학재단빌딩 303호에 대구의 법무법인 백두 서울 분사무실을 내게 되었습니다.(Tel:02-532-8900)

앞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어디서든 동문 여러분과 더욱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시간나시면 제 홈페이지(http://www.hoyahoya.com)에도 들러주세요.

====열린 우리당 중앙위원 출마의 변====

온 국민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어려서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었지만 매사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였습니다.
대구 계성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서울법대를 거쳐 제 22회 사법시험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습니다.
1982년 당시 권위적인 대법원장의 잘못된 편견으로 장애를 가진 후보자 네명에 대하여 법관임명을 거부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였지만, 과감하게 투쟁하여 저의 권리를 찾아 대구지방법원의 판사가 되었습니다.
이 투쟁과정은 제 개인의 권리만을 찾아주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사에 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공직을 거부하거나, 대학의 입학을 거부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인식을 넓게 확산시켰습니다.
이 후 저는 ‘장애인 운동’을 제 인생의 화두로 삼았습니다.
대구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가장 시급한 현안이던 ‘장애인 이동권’문제를 해결하고자, 만인모임을 결성하였습니다. 만명의 동지를 모아 조직한 장애인 교통 봉사단은 이후 대구 지하철이 준비되면서 ‘노인도 장애인도 탈 수 있는 대구지하철을 만들자는 시민 단체 협의회’(노장지협) 로 발전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처음 제기된 이동권 문제는 서울의 이동권연대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이제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에 관한 법률’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로 발전 하였습니다.

전국자원봉사운동의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장애인 운동의 경험은 저에게 자신감을 갖게하여, 저는 대구광역시종합자원봉사센터의 소장으로서, 수만의 자원봉사자를 양성하여 월드컵, 유니버시아드대회 현장에서 함께 땀을 흘렸습니다.
이제 대구가 선도한 자원봉사운동은 전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로 결실을 맺어가고 있으며, 저에게 더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휠체어 테니스, 휠체어 농구등 각종 장애인 스포츠 영역에서 뚜렷한 지도력을 보여,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제 총선혁명의 선도가 되겠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장애인 단체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정책위원장으로서 장애인단체 대선연대와 총선연대를 주도하였습니다.
참여와 분권의 새로운 시대는 장애인도 사회발전의 당당한 주체세력으로 일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MBC 성공시대의 주인공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 성실한 자세로, 이제 열린우리당 총선혁명의 선도역을 맞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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